채식주의자-한강
설명하기 어려운 불쾌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자아내는 스토리 덕에 몰입하여 볼 수 있었던 한강의 채식주의자
책을 덮을 때까지도 이 책의 의미에 집중하기보단 불쾌한 감정이 커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저자의 메시지가 분명해졌고, 공감하는 바가 크기에 재평가할 수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와 그녀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을 그려낸 책.
완전한 비건은 아니지만 부분적 채식주의자인 나의 입장에서, 책 '채식주의자'에서 말하고자 하는 채식의 의미는 조금 빨리 와닿았다. 육식은 의식하지 못하는 '폭력'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사람들이 채식주의자가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생명 존중, 종교, 건강 등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양한 만큼 이유도 제각각이다.
내가 12년 전 육식을 끊게된 이유는 생명 존중 보다는 덜 근사한 이유로써, 폭력성에 반대하고자였다.
나는 육식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상실한 공장식 축산업을 반대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엔 보이지 않는 폭력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작가 한강은 이러한 폭력을 주제로 한 것이 분명하다.
대개 일반적인 모습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아내로서/엄마로서 지켜야하는 여자의 모습, 여자로서의 브래지어 착용, 가부장적 사회, 자본주의..
육식으로 대표되는 식습관 조차 일반적인 모습으로 강요된다.
법은 아니지만 인간이면 으레 이러해야한다~ 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일종의 경계선이 존재하는 것이다.
적어도 인간 공동체 내에선 이를 벗어나면 가차없이 폭력이 가해진다.
일반적인 것을 강요하는 것이 폭력을 상징한다면,
일반적인 것을 강요하지 않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향하는 것이 그 반대가 될 수 있다.
작가는 폭력의 정반대로서 식물, 특히 나무, 그리고 채식을 택했다.
하지만 이것이 긍정적인 모습은 아니다.
영혜 언니의 남편처럼 사회적 규범을 벗어나 본능대로 행동하는 모습
본능이 이끄는 대로 휘두르는 예술적 행위
인간이길 거부하고 나무가 되고자 하는 영혜의 기괴한 모습..
과유불급이다.
비가시적인 경계를 마음대로 정해놓고 이를 어기는 사람을 정상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금해야한다.
하지만 이 경계를 넘어 너무나 멀리 가버리는 것도 인간이란 사회적 동물에겐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린 어디까지 허용해야할까?
정답이 없기에 한강 작가도 이에 대한 질문을 건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육식을 시작하며 이미 깊이 깨달은 부분이기도 하다.
윤리적인 문제를 비롯한 세상의 많은 부분은 정답이 없다는 것.
생각과 가치관이 모두 다른 인간 사회에서 경계의 적정선을 찾아가는 것이 정답과 가까워지는 길일 것이다.
애초에 그 경계란 선이 아닌 구름일지 모른다.
단순한 흥미를 넘어 지적인 고찰을 하도록 하는 소설
이러한 점에서 가히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